안녕하세요. 포항공과대학교 06학번이며, 현재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이론화학 전공중인 이 학교 17기 졸업생입니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의 학교 내 분위기가 떠올라 글을 남기게 되었네요. 오래 지난 일이고, 어처구니 없는 기억으로는 남을지언정 좋은 추억으로 남는 일은 절대 아닌 고로 저기 위의 '따뜻하고 정감있는 대화'와는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이 있는 대화'이긴 하니 읽지 않으실 분들은 가볍게 스킵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연구실에서 동료들과 이야기하면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고2-고3때쯤 수능 100일 남기기 전까지는 혼자 대학교 일반화학 교과서도 조금 보고, 인문 쪽으로도 이것저것 다른 책들 많이 찾아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책들을 읽는 시간은 주로 야자시간, 특히 모의고사 친 날 저녁이었을 겁니다-
저는 허구한 날 주변 친구들에게 "넌 왜 객기를 부리고 있냐" 라는 식으로 계속 비아냥 내지는 폭언을 들었고, 대놓고 저를 따돌리면서 제 기물을 때려 부수는 친구들도 많았죠. 그래서 저도 일부러 그런 것 읽는 일을 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연구실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다들 어처구니없다는 눈길로 바라보더군요. 이건 결코 정상적인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리고 그렇게 고교 수준 공부에만 매진해서 대학교에 입학한 후, 저는 첫 학기에 제 사고 방식과 공부 방식을 전부 다 뜯어고쳐야 했습니다. 비단 저만 겪은 어려움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만, 그 때 깨달았습니다. 순수하게 학업으로 이 곳의 다른 친구들과 경쟁하려 했을 때, 저는 따돌림 때문에 제 몸을 사리던 고3 시절을 학업적 측면으로 보면 완전히 버린 거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지금 와서 다시 돌이켜 보건대, 어떤 식으로든 고도의 학문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고교 시절에 일단 고교 과정이 끝나면 이것저것 건드려 보는 것이 맞다고 확신합니다. 그 시절의 조그마한 지식 하나하나보다, 스스로 공부할 topic을 찾아서 공부하던 그 경험과 자세 하나하나가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차이를 낳습니다.
지금은 학교 분위기가 어떤지 모르겠네요. 포항공과대학교 정시가 폐지된 이후로 후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정보를 구할 길이 없습니다. 뭐 맛 없는 추억은 이만하고, 졸업생으로서 부탁만 드리고 갈게요.
수능에만 매진하지 않고, 최소한 깊은 공부를 하고자 하는 학생에게는 그에 도움이 되는 조언과 기회, 그리고 열정을 주십시오. 그 시절에 혼자 공부할 주제를 찾아서 공부하는 자세는 대학에서의 흥미와 수월성, 나아가 진로를 보장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부디 학생들 사이에서 저러한 학생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도록 선생님들께서 힘써 주십시오. 학교의 교훈은 바뀌지 않았다면 아직 '자율, 창조'일 것입니다. 그것을 학생들끼리 짓밟지 못하도록, 자유로운 분위기 창조에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친구들이 뭉개 버린 '자율, 창조'를 끝까지 고수하여 학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안 좋은 추억이 많아 어디 가서 고등학교 어디 나왔다고 말 거의 안 하는, 동문회도 들지 않는 괴짜 동문 하나가 선배님들 많은 보드에 인사 드리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