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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 중간하여 머리가 지끈지끈 쑤셔오고, 성적에 대한 불안감과 스트레스는 끝을 모르고 쌓여만 가고 있습니다.그렇게 바쁜듯한 와중에서도 틈만 나면 팔벼개를 하고 잠이 들다가
"또 자니?"하는 말에 분개하는 그런 생활의 무한 반복입니다. 힘들다면 무지하게 힘든 것이고, 정신이 없다면 정신이 없는, 웃긴다면 웃기는 그런 날들입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를 자꾸만 잊어 가고 있다는 공허함입니다. 아, 전학이나, 또는 학교라는 체제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그낭 다른 종류입니다.
맘껏 웃으며 책을 읽는 여유, 휴일이라는 것에 대한 느슨함, 뭐 이런 것들도 조금 있고,파릇한 봄을 이제서야 느꼈다는 것도 조금 그렇고, 아예 눈물 흘릴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고 딱히 꼬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대충 이렇습니다.
참, 중요한 걸 잊고 있었네요. 사랑과 관심입니다.
이 시간 즈음이면, 어머니께서는 사과를 들고 졸린 눈 비비시며 들어 오셨고, 어느샌가 졸려서 뒤돌아 보면, 아버지가 부드럽게 안마를 해주셨고,혹은 주무시고 계셨고, 지쳐 쓰러져 깜박 잠이 들면은 어느샌가 포근한 이불이 덮혀져 있었고, 나, 시험 못 봤다면 같이 걱정도 해주시고 혹은 기분 풀라며 맛 있는 것도 사주셨고
"괜찮아, 다음부터 잘 하면 되지."
이 한 마디가 어찌나 간절한지... 사치라면 사치이겠으나 조그만 소망이라면 또한 그렇겠지요.
비단 시험뿐만이 아니랍니다. 밥을 안 먹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책상 정리 다 해놔도 눈도 깜박 않고.입던 옷 이주일씩 입어도 아는 놈 하나 없습니다.너무 힘들어도 기댈 곳이 없고, 내가 기분 좋다하여 누구같이 기뻐하는 이도 없는 이곳에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예전에는 느끼지도 못 했던 당연하고도 막연 했던 그것들이 이제서야 막연한 그리움으로 다가 오는 것입니다.
(중략)
지난 28일이었던가요?자다가 깨어보니 내 앞에,
아 버 지!
어떻게 오셨는지 그 포근한 얼굴하며, 그런데도 고작 30분남짓 밖에는 얘기 못 하고 그냥 가셔야 했던 당신의 뒷모습이 어찌나 쓸쓸하던지...
그래도 예전에 제가 아버지께 바랬던 게 따뜻한 몇 마디와 손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들어서는 오히려 그 바램의 단지가 가득 차올라 넘치는 것 같으니....
그렇습니다. 걱정스레 말을 하면 마음 푹 놓으라고 때론 놀래키듯 나타나셔서 긴장도 풀어 주시고 아낌없는 한마디한마디가 그대로 가슴에 들어 오고, 아님, 말씀은 쌀쌀하고 냉정해도 끝에 가서는 결국 말없이 행동으로 직접...
나, 그 때 학교 오는 날, 선약을 저버리시고, 남부터미날에 내려 주시려다 그냥 내쳐 학교까지 이 못난 아들 태우고 가는 그 차 안에서 결국은 자는 척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는데... 아버지, 이제는 이렇게 몸과 마음으로 느껴지네요. 당신이 바뀐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당신은 그대로이지만, 내가 발견한 것이겠지요. 마치 모르고 있었다는듯이 당신의 따뜻함을...
어제 아침에 신문에 '부총'의 아버지 '부뢰'의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의 책소개를 보았습니다.그 기사 상단쯤에는 책을 들고 있는 '부뢰'의 사진이 있었는데, 순간 뭉클하고...웬지 당신의 모습과도 같아 보여서. 순간 당신이 생각나서. 언제나 내게 가르침을 주시던,
영원한 나의 우상. 당신이 생각나서...
그리운 어머니!
이틀 혹은 사흘이면,어김없이 날라 오는 그 조그맣고 하얀 편지지에서 아들은 고요하고 따뜻한 당신을 느낍니다. 언제곤 2,30분 동안을 읽곤 하지요. 조용히 웃기도 하고 눈물이 핑 돌기도 하고 당신의 솔직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에 어쩔 때는 가슴이 미어져 오기도 하고. 그러나 마치 내 옆에 계신듯이 정감과 관심이 묻어나는 솔직한 언어. 잠시 눈을 감으면, 편지에서 어머니의 향기가 그려집니다.팔을 벼개에 괴이고 목 끝가지 깊숙히 두꺼운 이불을 덮고 누우셔서 졸린 눈 비비면서 펜을 놀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렇게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입니다.
(중략)
매일 새벽 못난 아들 멀리 떨어진 아들을 위해 기도하심이 며칠 전부터 정말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점호 시간입니다. 각자의 고향을 향하여 묵념을 하는 시간, 눈을 감으면, 갑자기 온 몸에 뭉클한 전류가 흐르고, 눈가에 포근한 따스함이 흐르는.... 정말 신기하죠?
난, 믿습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이와 같은 것일 거라고
뭉클하고 포근하고 따스한, 당신의 관심과 애정이 녹아 있을거라고..언제나, 내 곁에 있는 당신과 같을 것이라고...
(하략)
어제 저녁 커피 탓인가 잠이 안 와 서랍에 소중한 것을 보관하는 비닐백을 들추다 재작년 어버이날즈음해서 보낸 아이의 편지를 읽게 되었다. 새삼 눈물겨운 회상을 하며
새벽 2시까지 '초심'을 잃지 말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면서 그 아이의 글을 인용해 쓰다가 문득 입학하면서 우리 아이와 같은 갈등을 느낄지도 모르는 신입생과 요즘 착찹한 심경으로 떠나 보낼 준비를 하시는 부모님들께 그 내적 갈등의 상황을 미리 보여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시절 그 흔한 학원도 안 보내고 자발적으로 공부하길 바랬던, 게다가 시험 때만 초저녁에 자고 새벽 2,3시에 일어나 공부를 하던 아이. 그래서 밤 9시에 쏟아지는 잠을 주체 못 했던... 게다가 동부교육청 관내 아마 처음으로 혼자 한일고에 가서 선배도 없이 외론 처지에 놓였던...
영어 공부도 수학공부도 그저 시험 때만 해서 기초가 전혀 쌓여지지 않은 채, 정말 운 좋게 합격한 그 애의 입장에서 선행학습을 많이 하고 온 아이들 속에서 느낀 좌절은 상상이상이었다. 현재도 그 휴유증처럼 이킬레스건이 되어,그애의 발목을 잡고 있어 유감이지만, 한일고에 간 것은 그 애 인생에 커다란 전기가 될만한 것이라고 본인도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
스스로 '한일고' 일원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아이.
'데미안' 역할을 통해 자신을 다잡고, 처음으로 극본을 써서 연출을 하는 그런 경험을 한 것은 그 아이의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의 혼란에다
질풍노도 같은 청소년기에 한 때의 상처가, 그 좌절이, 그 절절한 외로움이, 그 아픔이, 영글고 성숙해져 마치 영롱한 진주가 되어 가는 느낌이 든다.
이렇듯 아이에게 스스로 일어나 외로움과 어려움을 꿋꿋하게 헤쳐나가는 힘과 용기를 갖게 도와 주시는 한편 새로운 세계에로의 힘찬 도약의 계기를 마련해주신 학교 당국과 끝없이 헌신적인 참교육자이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우리 아이를 비롯한 3학년 모두들, 올 1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각기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리라 믿으며, 내리 3년간 담임을 맡아 주시는 선생님들께 다시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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