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그간의 과정이 얼마나 아픈 시간들이었건,
같은 한일고의 학부모로서,
그리고 영원한 한일고의 가족으로 남고싶은 한 사람으로서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니,
그 어떤 말씀도 입에서 흘러 나오는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겠지요.
이렇게 밖에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용서하십시오.
왜 그래야 했는지는 묻고 싶지 않습니다.
꼭 그래야 되었는지도 감히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식을 키워오면서
정말로 죽고싶을 때가 저희에게도 있었으니까요.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지고있는 짐을 대신 지고 싶은 적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 땅의 교육현실들...
평범한 학창시절을 허용하지 않는 교육여건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언제나 그러하듯 그 끝은... 눈물이었으며,
아들에게는 미안함이었습니다.
먼 곳에 아들을 남겨놓고,
입시라는 전쟁터에 홀로 내보낸 것같은 아픔에,
철없는 것을 낯선 타향에 홀로 떼어놓은 것처럼,
외아들 군대 보낸 부모의 마음처럼,
그 아픈 마음은 더욱 절실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한일고를 사랑합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서 학교는,
단순한 학교로서의 범위를 넘은 지 오래입니다.
그곳은 집이고,
그곳의 선배와 친구, 그리고 후배는 곧 가족이고 형제입니다.
진정 선생님들은 우리 아이들의 부모이십니다.
구작골에서의 3년 만큼은 누가 뭐래도 선생님들이 부모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낯선 공주땅의 한 고등학교가 더욱더 소중한 존재로 느껴집니다.
입학 전 가슴조이며 기다리던 합격자 발표...
기숙사에 처음 아들을 남겨두고 나올 때 삼키던 눈물...
그리고 간혹 들려오는 아들의 음성에 일희일비를 반복하던 시간들...
그러한 시간들이 쌓여가면서
어느덧 한일고는 아들의 모교가 아니라 모든 부모의 모교가 되었습니다.
가정을 지켜야 하듯,
우리 아이들의 보금자리는 지켜져야 합니다.
480명의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울고 웃으며, 때론 싸우고 때론 보듬으며,
공부에 지친 심신을 20여분의 회식(?)시간으로 위로 받으며,
그리고...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우리의 한일고는 포근한 쉼터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아쉽기도 하고,
때로는 힘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곳은 사랑하는 아들의 보금자리이기에,
뒤늦게 불어닥친 눈보라가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선생님.
힘내십시오.
선생님들께서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멀리서 이렇게 글로 밖에는 저희들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지만,
많은 부모님들이 선생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지금 너를 힘들게 하는 모든 현실들.
성적...입시...갈등...욕망...
그 모든 것들은 과정이란다.
그것들이 목표가 될 수는 결코 없단다.
네가 이루고자 하는 진정한 삶의 목표에 다가가는 한 과정에 불과할 뿐,
결코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단다.
때로는 낙담하고, 때로는 미소짓기도 하겠지만...
조금 늦게 가면 어떻니?
조금 뒤에 가면 또 어떻니...?
중요한 것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란다.
너의 마음 속에 희망의 등불이 켜져 있는 한,
꿈이 살아서 숨쉬고 있는 한
긴 인생의 여정으로 보면 힘든 현실도 추억이 될 수 있단다.
우리 기억하기로 하자.
우리를 죽이는 것은 힘든 현실이 아니라,
꿈을 잃는 것이라는 것을!
글을 올리는 중에 내일로 예정된 소풍이 취소되었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마음이 더욱 아파옵니다.
우리 아이들의 보금자리에 빨리 봄햇살이 비추었으면...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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