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운명이 놓아준 징검다리입니다―.
우리는 사람과의 만남에서부터 환경이나 현상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인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부터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사랑·미움·욕심, 즉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등의 인연을 겪기도 합니다. 특히 기대와 다른 연緣을 만날 경우 불평불만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 극복해낼 수 없는 태생적·환경적 인연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지 않을까요?
2년 수개월 전 아이와 함께 입학상담을 위해 한일고등학교에 방문한 나는, 그저 꼴찌라도 좋으니 한일고에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한일고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과 체질을 익히게 되면 나중에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과외 체질의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더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고맙게도 아이는 한일고에 합격했고, 지금은 벌써 3학년이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순진하게 친구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해왔고, 성적 또한 내려갔다 올라갔다 반복하면서 친구들과의 생활에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는 이따금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성적에 연연하지 마라. 건강이 우선이다. 니들 학교에서 꼴지를 하더라도 다른 학교에 비하면 상위권이 아니냐. 마음 상하면 몸도 상하고, 몸 상하면 공부고 뭐고 다 필요 없는 게 된다.”라면서 아이 눈치를 살핍니다.
그러면 아이는 오히려 아빠를 더 걱정합니다.
“아빠나 담배부터 끊으세요.”
이 작은 것들에서부터 가족들 간의 애틋한 정이 오가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어쨌거나 아이가 마음을 비우고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차를 몰고 내려가 먼발치에서나마 기숙사 불빛이라도 보고 왔으면 하는 마음이 몰려옵니다.
지난겨울 먼저 졸업한 아이의 선배들 얘기를 들었습니다. 졸업 후 호실 친구들 집을 차례로 돌았는데, 두 달 동안 전국을 돌게 되었다, 게 중에는 대학에 들어간 애도 있고 떨어진 애들도 있었는데, 떨어진 애는 떨어진 애대로 다음의 준비를 위한 충전이 되는 것 같더라…….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진정으로 한일고의 장점과 그 나이 때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나아가 장차 아이들이 학창시절 이후 서로 어떻게 형제애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흐뭇해졌습니다. 다른 학교와는 달리 한일고만의 남다른 무엇을 가슴에 안고 살아갔으면 했기에.
좋든 나쁘든 우리 앞의 모든 현상들은 우리가 겪어야 하는 인연들이고, 그래서 우리가 짚고 건너야 할 운명적 징검다리인 것입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건너뛰고 싶어도 건너 뛸 수 없는,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운명적 징검다리인 것입니다.
문제는 그 운명적 징검다리를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이고, 그래서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마음가짐 또한 또 하나의 운명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아이들을 통해 맺어진 우리 모두의 인연, 그냥 스쳐지날 인연은 분명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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