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고 교정과 선생님들이 그리워 질때면 학교 홈페이지에 들러 슬쩍슬쩍 울기도하는 조금 바보같은 졸업생입니다.
제작년까지만 해도 매년 후배들의 축제에 들러 인사도 하고 학교에 남아있는 저와 친구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그나마도 상당한 각오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학교 홈페이지에 올때면 늘 이곳에 들러 여러 학부모님들의 애정어린 글들을 보며 울고 웃고, 때론 몇마디 남겨 보기도 합니다.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에 엃힌 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터라 결혼도 다소 빨랐는데,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을 가진 뒤에 결혼하는 최근의 경향에 비추었을 때, 아직 서른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는 장인어른의 허락을 얻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처음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러 간 날,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날카로운 질문들과 탐색전은 고사하고 뜻하지 않은 환대와 따뜻한 분위기에 놀라기도 하고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결혼 허락은 애초에 결정되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결혼한 후에 알았습니다.
장인께서 사업차 공주지역을 방문하셨는데, 목적지로 가시던 길에 학교앞 도로(졸업생들은 '광정 아우토반' 이라고 합니다)를 지나시게 되셨나 봅니다.
당시 같은 차에 동행하던 공주시청의 한 공무원이,
"이 학교가 한일고등학교 인데, 각 지역의 우수한......"
이라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했나 봅니다. 집사람을 통해 예비막내사위가 이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장인께서 우리 막내사위가 이 학교 나왔다고 말씀하시니, 그 공무원이 "사위 참 잘 얻으셨습니다." 하더랍니다.
그 한마디가, 어쩌면 제가 거쳐갔을지 모르는 수많은 질문의 난관들을 모두 제쳐버린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전 직장에서 모시던 선배 한 분이, IBM으로 이직하면서 가진 술자리에서 신혼여행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신이 학교를 다닌 보스턴의 대학교 교정을 돌아보며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멀리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신혼여행지는 아니었지만, 결혼식 2주 전 주말에 아내와 함께 한일고의 교정에서 저의 학창 시절을 추억했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둘러 본 제 아내는 아마도,
"이 학교를 졸업한 남자라면 더욱 믿을만 하다." 라고 생각 했을겁니다.
저는 내년 3월에 한 아이의 아빠가 됩니다.
부친께서 20살(호적상)에 저는 낳으시고 저 또한 서른 전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으니 부친께서는,
'마흔줄에 할아버지를 만든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늘 불평하십니다만, 설레는 마음은 저와 다름 없으십니다.
얼마전 아내와 함께 정밀 초음파 검사를 할 때, 저는 정말 모니터를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아들인지 딸인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들과 딸 중에 누가 더 좋은지 물어보지만, 저는 한 번도 대답한 적이 없습니다. 둘 다 좋지요.
그렇지만 여기서 처음 공개하는데, 저는 아들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비난하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한일고등학교는 여학생이 입학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 놓았습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 역시 한일고등학교와 참 많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창시절로 되돌리면 그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이 공간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가끔씩 만나는 동기 녀석들과의 술자리는 지금의 사회이야기보다 학창시절의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게 됩니다.
여러 학부모님들.
졸업생의 입장에서 저의 부모님과 다를 바 없고,
예비아빠로서 터울이 큰 후배가 되기도 하겠습니다만,
참 어려운, 그리고 훌륭한 결정을 하셨습니다.
소중한 자녀들을 멀리 학교에 두고 계신 그 마음 제가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만, 지나온 저의 학창시절을 생각해 보면, 아주 소수의 학생들만이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을 학부모님들의 자녀가 또한 저의 후배들이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염려마십시오.
저는 졸업한지 십년 가깝게 지난 지금에도 故한조해 선생님의 창학정신을 외우고 있습니다. 학교가 시내의 학원보다 위상이 낮아져 버린 지금의 현실에서 대한민국의 어느 고등학교 졸업생이 학교의 창학정신과 가르침을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겠습니까?
낯선 사람에게도 고개 숙여 인사하는 건, 비뚤어진 천재가 아닌 겸손하고 다듬어진 인재가 되라는 의미라는 것을 어느 고등학교에서 배울 수 있을까요?
친구들과 밤을 새워 학교 이야기를 하던 습관이 여기서도 나오게 되는군요.
학부모님들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자랑스러운 후배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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