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취재 못한 한일고 이야기
< 전대희를 아시나요? >
1,한달 안에 전학을 가겠구나
'다른 아이들은 호기심반 기대반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데 이 아이는 창 밖만 바라보며 우울해 있고, 교무실에 불러 말을 건네면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리는 거예요. 늘 기침을 하고 .......이 아이는 한달 안에 전학을 가겠구나......'
일학년 담임이었던 전대희 선생님은 학기초에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셨다. 우리 아들은 처음 한일고에 입학 할 당시 만성적인 기관지염으로 심한 기침에 시달리고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고 기운이 없어 도저히 단체 생활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몸이 아프면 정신력도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아들은 처음 입학식날 부터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들을 두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우리 부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공주에 있는 유내과에 몇달간 다니며 폐렴약을 먹었지만 일학기 다가도록 병세가 나아지지 않아 결국 아주대학 병원으로 옮겨 검사를 하니 곰팡이라는 알레르기로 인한 천식이었고 기숙사생활은 최악의 조건이었다. 그리고 기관지 확장증으로 감기만 걸리면 곧바로 폐렴이 되어 수없이 엑스레이 사진 기관지 내시경 등을 찍었다. 그렇게 매월 한번 면역주사를 맞고, 항생제를 밥먹듯 먹으며 지금까지 이년 동안 버티어왔다.
2.독한 어미
병원에 갈 때마다 초기의 담당주치의는 '이 학생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야. 충분히 쉬고 잘먹고 천식을 유발하는 환경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대학이 전부예요? 꼭 기숙학교 다녀야해요? 하며 마치 부모의 욕심 때문에 아들을 몰아대는 독한 어미 인냥 질책했다. 그리고 내성적이고 수줍어하는 아들에게도 번번히 같은 훈계를 하곤 했다.
"무슨 남자가 말도 제대로 못해,? 사내답지 못하게. 너 같은 애는 군대 가서 다시 남자로 태어나야해."
환자는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는 강자인 의사 앞에선 무력한 약자일 수 밖에 없다.
진료행위를 넘어서 자신의 가치관을 주입시키며,남성성을 들먹이는 그 여의사의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머리를 조아리며 듣고 있을 수 밖에 .
"너 같은 애는 진단서 안 써줄거야. 지금 북한 핵무기 어쩌니 하면서 전쟁 날 판인데 니가 그런 정신으로 되겠니?"
오년간 면역주사를 맞고, 군대 갈 때쯤 되면 이 의사에게 진단서를 받는다고 한다. 진단서 한장으로 후방일지 전방일지 결정난다니 참으로 대단한 권력이었다. 이렇게 병원에 갈 때마다 번번히 책망을 듣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다시 기숙사로 아들을 돌려보낼 때마다 참담했었다. 의사 말대로 휴학을 해서 푹 쉬게 해야하는 것인지. 그러나, 이년간에 걸쳐 이런 어려움과 갈등을 극복하게 하고 아들에게 힘을 주었던 것은 의사가 내어준 처뱡약의 약효보다도 이년간 계속 담임을 맡아주신 전대희 선생님의 부드러운 처방전 곧 사랑이라는 비약 때문이었다.
3,교사 또는 의사의 권력
교사와 의사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이를 맡긴 학부모에게, 몸을 맡긴 환자에게 있어 그둘은 절대권력을 가진, 생사여탈권을 쥔 강자라는 점이다. 물론 강자인 교사나 의사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권력의 속성이 그러하듯. 강자의 가시 돋힌 한마디는 약자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강자의 자비로운 한마디는 약자에게 신비로운 묘약이 되기도 한다.
만일 전대희 선생님이 그 의사처럼, 한심하다는 투로.싸늘한 시선으로,훈계조로, 이렇게 면박만 줬다면?
"너, 그것 밖에 못되니? 너 형편 없구나? 남자가 그렇게 약해 빠져서 뭣하겠니? 또 학교 빠지고 병원이야? 핑게도 많다,........."
더구나 한일고는 남자들만의 기숙학교다. 많은 남학생들의 일상을 콘트롤 하려면 군대식 통제와 방식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대희 선생을 이년간 겪으면서 그것은 기우라는 것을 알았다.
이년간 전대희 선생님이 보여주신 친절과 꼼꼼함과 자상함을 일일이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을까. 바쁜 학사 일정속에서도 꼬박꼬박 메일의 답장을 보내주셨고 한달에 한번 병원가는 날은 수업에 영향 없도록 시간표를 일일이 체크해 날짜를 정해주고. 예약시간을 잡으면 다시 학교일정에 맞추어 재조정해 주셨다. 여행갈 때 방을 배정 할 때에도 신경을 써 주셨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선생님의 그 마음이었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이다.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사진으로 찍어낼 수도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년이라는 기간 동안 전선생님이 병약한 아들과,늘 걱정과 조마조마함으로 불안해 하는 우리 부부에게 준 다사로운 마음은 진정 큰 것이었다. 더구나, 기침은 얼마나 하는걸까, 또 감기에 안걸렸을까 한약은 잘 먹고 있을까, 늘 아들 걱정으로 지낼때, 선생님이 보내주시는 메일을 읽는 순간 얼마나 마음의 안도를 주었는지.매번 편지의 행간에서는 아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따사로운 눈길을 역력히 느낄수 있었다. 메일의 몇줄을 인용해 소개해도 선생님께 실례가 안될지?
"그동안 별일없으셨는지요.제가 메일을 너무 늦게 보내서 죄송하네요.**이는 잘 있습니다.**이가 그동안도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근 한달 가량은 매우 집중해서 하는 모습입니다.공부에 대한 특별한 재미가 붙었는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물어봐도 그냥 웃기만 해서 잘은 모르지만 요즘에 참 열심히 합니다.지난주 초까지는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았는데 금요일부터 체육 시간에 공도 다시 차고 몸이 좋습니다.어제도 비가 오는데 공을 차고 와서 머리가 다 젖었네요.**이가 보기와는 달리 제법 운동 신경도 있고,친구들과 축구하는 것을 즐겨서 여러 모로 학교생활에 정붙이고 살아 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네요............12월 귀성은 사정이 괜찮다면 12월30일(화)로 잡았으면 하네요......**이 몸이 별로 안 좋으면 변경은 가능하니 어려우시면 다시 연락주세요."
"장마가 끝난줄 알았는데 아직은 주변이 눅눅해서 **이 한테는 좋은 환경은 아닌것 같습니다.그래도 한약도 꾸준히 복용하고 있고 코에 넣는 약도 꼬박 꼬박 하는 것 같습니다.제습기는 없었던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그래도 필요하시다고 생각하시면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연락주셔요."
"...오늘 모의고사 성적이 왔습니다................ 저도 뿌듯하고 기분이 좋습니다....................녀석이 워낙 낙천적이라 공부에 별로 욕심이 없다고 느꼈는데 요즘은 재미도 붙이고 욕심도 내는 모습이 보이네요.건강 챙기면서 거둔 성적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4.늘,수줍어한다
전대희 선생님은 늘 수줍어 한다. 늘 부끄러워한다. 수줍은 미소와 몸에 배인 겸손함,자기 스스로 자기의 아름다움이 무엇이지 모르고 있는 자의 천진함.
"제가 뭘 한 게 있나요"
권위적 남성주의, 힘에 의한 지배, 마초, 파시즘,.....이런 것들이 팽배한 우리 사회 속에서 전대희 선생님의 따스한 심성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차이와 다름을 인정해 주고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전대희 선생은 정복보다는 보살핌을, 죽임보다는 살림을, 소유보다는 나눔을 중히 여기는 분임에 틀림없다.
나약한 것, 어린 것,측은한 것들을 한번 더 돌아보며 다독거리고 북돋아 주는 그 마음이야말로 교사가 갖춰야할 최고 자질이 아닌가. 학부모들이 알아야 할 한일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부모를 대신해 집떠난 자식을 보듬어주는 인자한 선생님이 존재하느냐 아니냐가 아닐까. 최근 잇달아 매스콤에서 사교육비 안드는 학교, 수능 최상위권, 이런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한일고를 소개하고 있지만, 기자들이 한가지 놓친 것이 있었다. 숨어있는 한 아름다운 교사, 전대희 선생님에 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2-2반 학부모 안일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