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낯설고 낯선 구작골에 두 아들이 인연을 맺어서 6년을 보냈습니다. 지나고 보니 화살처럼 휙 지나간 것 같습니다만, 어린 아들과의 첫 이별에서부터 대학 입시생으로서의 생활까지 녹록치는 않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 그 시간들을 끝내고 나니 구작골에서의 기억들이 흐뭇함과 아쉬움으로 교차합니다.
한일고에 아이가 있음으로서 부모의 라이프사이클도 달라지고, 입시공부에 대한 개념도 달라지고, 입시제도에 대한 관심도 달라졌습니다. 아이와 학교를 믿는 마음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 함께 있었습니다.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라 그 안에서의 생활도 마냥 순탄치만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청소년기에 겪는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마찬가지로 일어나지만 부모에게 말은 잘 안 합니다. 가끔 오는 전화에서는 돈 보내달라는 얘기 아니면 그냥 묻는 말에 건성 건성 대답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아이는 스스로 결정하고 극복하는 데 익숙해져 갑니다. 점점 부모의 진부한 코치가 귀찮아지기도 합니다. 좁은 곳에 살다 보니 편향된 정보나 시각 때문에 부모와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간혹 모의고사 성적으로 건재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내신은 신기한 등급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면회 가는 날 꼭두새벽부터 준비하고 먼 길 달려서 겨우 두어시간 만나고 돌아오면 왜 이런 짓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모르는 학교 소식을 다른 부모님들을 통해 들으면 더욱 답답해집니다. 정보가 부족할 때 느끼는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조바심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시간이 다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미 훌쩍 커버린 아이는 때로는 어떤 이슈의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왜곡된 스토리가 회자되기도 합니다.
입시제도는 좀 자주 바뀝니까? 순서대로 대학을 가는 것은 아니다 보니 억울한 마음도 듭니다. 그러지만 우리 아이가 갈 자리는 딱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여러 자리 있을 필요도 없고, 여러 가지 전형방법이 모두 나를 위한 것일 필요가 없습니다.
한일고의 힘은 자습이라 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자기주도학습이라 합디다. 아이 말로는 그 시간에 잠도 무지 많이 잤다고 하는데 어쨌든 그 자습으로 해마다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좋은 추억도 많습니다. 아이 이야기를 동네에서 섣불리 할 수 없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은근히 목에 힘주고 삽니다. 힘든 중에도 꿈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 하나 하나가 보람입니다. 짧은 면회시간에 만드는 추억들도 많습니다.
부모의 일은 믿고 격려하는 일 뿐, 계획도 아이가 하고 실행도 아이가 합니다. 인고의 세월 끝에 각자의 그릇을 만들어 세상으로 나옵니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는 중학생일 때의 아들만 생각하다가 너무 커 버린 녀석 때문에 갈등하고 서운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돌아와 좁은 집을 꽉 채우는 아들이 든든합니다.
현제관에 또 후배들이 들어오고, 3월의 쌀쌀한 교정 곳곳에 애틋한 이별 장면이 펼쳐지겠지요. 믿으세요. 아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 적응합니다. 힘든 시기도 오겠지만 결국 시간이 답입니다. 한일고의 학부모님들은 모두 정말 멋진 아들 두셨습니다.
부모에게마저 애틋한 경험과 추억을 만들어 준 한일고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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