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때가 아닌데도 꽤 많은 비가 내렸다.
연녹색의 싱그러움이 화사한 꽃의 아름다움보다도 매력적인 토요일 오후의 교정,
그 아이와 단 둘이서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은 어느덧 10여 년 전의 어느 날.
작은 키에 연약해 뵈는 하얀 피부의 사내아이가 책과 씨름하다 잠들어있다. 깨우려다. 안스러워 그냥 지나친다. 얼마 후 아이는 또다시 책을 붙든다. "젠 화장실에도 안가나" 움직이려 조차하지 않는 아이가 이상하게 보인다. "알 수 없네. 저런 아이가 전교에서 꼴찌라니." 방법을 이러 저리 모색해보지만 결과는 늘 똑같다. "이번에도 수학은 또 "가"로구나!" 아니 정확히 말하면 6학기 중 5번이 "가"고 단 한번이 "양"이었다. 다른 과목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차라리 교사를 하지 말 것을" 그 아이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아이는 조치원에 있는 고려대학교 분교에 진학했고 그 후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오는 그 아이가 내 앞에 나타났다. 스승의 날이라고 아내가 만들어준 과자도시락을 들고 서있는 사람은 분명 10여 년 전의 해맑은 웃음 잘 웃던 바로 그 아이였다.
나이 32살, 삼성 생명 서울 본사 기획부 근무, 3년 전에 결혼. . . 순간 믿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아! 그렇구나. 공부는 정직한 거야. 언젠가 결실을 꼭 맺게되는 거야. 다만 그 시기가 문제일 뿐!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래 ○○야! 이제야 결실을 맺는 구나. 너의 성공 뒤에 숨겨져 있는 피눈물나는 노력! 바다 같은 땀방울, 그리고 손톱이 빠질 것 같았던 고통의 나날들, 이 세상 누가 그 사실을 알겠니. 정말 장하다. 힘껏 부둥켜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구나. 이제야. 네게 진 빚을 갚은 느낌이구나!
교정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아무도 없는 빈 교무실은 텅 빈 공허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이젠 외롭지도 힘들지도 않다. 교사가 된 것이 이토록 자랑스럽고 행복한 적도 없었다. 아직도 그 아이의 따스한 숨결이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느껴진다. 문득 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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