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석목이에게
(3학년 학생과 학부모님들께)
내일이 졸업식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니? 졸업식 때 모든 이들을 만날 수도 없고 이야기할 시간이 없기에 몇 자 적어본다. 물론 너는 만나겠지만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홈피에 들어와 봤다. 졸업식 연기로 인해 난리가 났다는 소문에 잠시 들러 너의 글을 보았단다. 지난 3년, 작게는 지난 1년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지. 지친 몸과 마음을 서로들 부둥켜 안고서 우리 잘해보자고 위로하고 다짐하던 그 시간이 새삼스레 머릿속 깊은 곳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또 한편으로는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느껴지는 아린 마음은 참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왔단다. 우리가 함께 다짐했던 소중한 것들이 결코 깨지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졸업식 연기 당시 충청지방에 폭설이 내렸고 빙판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단다. 연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을 짓누르는 엄청난 중압감을 너희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졸업식 참석을 위해 휴가를 내신 분, 열차표를 예약하신 분, 전후 일정이 엉클어지는 등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학교는 부득이 발생할 지도 모를 교통 안전을 최우선적 가치로 보고 연기하게 된 것이었다.
3학년 부장으로서, 담임으로서 일부대학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일정과 미리 재수를 결정하고 일찍 입소하는 학생들의 일정을 파악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구나. 정말 미안하다. (모든 학생과 학부모님들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정중히 올리는 바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 오해에 대해 다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최종적인 판단은 너의 몫이지만 말이다.
첫째, 연기 결정에는 3학년 담임선생님을 대표해서 학년부장인 내가 참여했었다. 앞서 이야기한 모든 이야기들이 제기 되었지만 안전을 최우선적 가치로 판단했었다. 우리가 각종 행사 시에 안전사고로 인해 마음 아파하고 우리 스스로가 시간적, 정신적 피해를 본 적이 몇 차례 있었지 않았니? 결과적으로는 연기로 인한 혼란과 많은 분들에게 여러모로 피해를 준 점에 대해서는 책임을 피할 길이 없구나. 정말로 미안하다.
둘째, ‘이사장님 때문에 졸업식을 연기했다’ 또는 ‘수요일로 정했다’는 이야기 또한 사실이 아니란다. 개교 초부터 수요일로 정해 학교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고 한의원의 휴진일 또한 수요일에 맞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이사장님이 참석하시어 너희들의 장도를 축하해 주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겠니? 휴진일에 집에서 쉬면서 다른 이사님으로 하여금 참석케 하여 축사를 대신할 수도 있는 일인데 굳이 참석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본단다. 이사장님 때문에 졸업식이 연기된다면 나부터가 반대란다. 졸업식은 무엇보다도 너희들과 부모님들의 참석이 최우선이 되겠지, 그리고 모든 한일 교직원 들이라고 본다. ‘가만히 앉아서 욕 먹는다’는 말을 들어 보았니? 잘못도 없는데 말이다. 이사장님 또한 또다른 피해자가 되었구나.
셋째, 너희들의 글을 보고, 일부 대학의 오리엔테이션으로 인해 졸업식 참석이 불가능하다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전화를 받고서 곧바로 재론 중에 있었단다. 부득이한 경우는 참석이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너희들의 주장이 옳았고 구작골에 대한 무한 사랑을 확인 하였기에 신속한 결정이 이루어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감상을 적고 싶구나.
많은 친구들과 모여 사진도 찍고 이야기하고 싶은 심정을 왜 모르겠니? 너희들 없는 졸업식을 학교에서 바랄까? 선생님들은 노심초사란다. 행여 마음에 안드는 대학에 합격했거나, 재수를 결심한 사람들 중에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어쩌나? 합격한 사람들만 모이는 졸업식이 아니지 않니? 너희들 모두가 제자이고 영원한 한일인이지 않니?
너에게 너희들의 뜻이 무엇인지, 원하는 날짜가 언제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했을 때, 선생님의 질책(?)에 대해서는 겸허히 수용하면서 ‘학교라면 선생님께 뒤통수라고 맞았으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할 것’이라는 너의 자조 섞인 말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단다. 석목아 우리 아파하지 말자. 친구를, 선생님들을, 학교를 믿고 의지해 오지 않았니?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차분하게 이야기 하고 해결해 나간다면 서로 마음 아파할 일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선의의 행위도 서로 간에 의사소통이 부족하다면 원치 않은 결과를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구나. 사회에 진출할 너도 하나 배운 셈이 되겠고.....
졸업식 일정 재조정으로 인해 해외 여행 계획을 잡으신 분들, 이사 날짜를 바꾸신 분들, 또다른 피해(?)를 초래한 분들 모두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밖에 드릴 것이 없네요.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책임을 우리 3학년 담임들은 무한책임을 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담임을 믿고 따라준 1반 학생과 학부모님, 어려울 때마다 양보하고 위로해준 3학년 모든 학생들, 학부모님들께 학년부장으로서 정말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무쪼록 많은 친구들이 모여 즐겁고 뜻 깊은 졸업식이 되었으면 한다. 어느 해보다도 가슴 속 깊이 새겨질 너희들이기에 평생 지워지질 않을 인생의 동지가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 힘내자구나. 우리가 가야할 길은 너무나도 험난하고 먼 길이지 않니?
구작골에서 임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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