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최용희
  작성일 : 2003년 05월 02일 10시 13분 33초

학부모(2003. 3. 4)

작년 봄, 쌀쌀한 꽃샘 추위 속에 학업을 위해 집을 떠나는 아이를 위해 보퉁이 마다 필요한 것들을 챙겨 들고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 때도 정안천가에는 겨우내 얼었던 맑은 물이 아직은 어리고 약한 물소리를 내며 흘러 내리고, 구작골 산등성이에는 겨울 잔듸의 색깔이 진하게 남아 있는, 그래서 더욱 아늑하고 푸근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이와 함께 교정 이 곳 저 곳을 둘러보면서 나눈 비장한 각오의 말들,
"한 석봉이가 되기 전에는 하산할 생각일랑 말아라"
" 아휴 엄마, 한 석봉은 무슨, 하지만 열심히 할게요. 제가 얼마나 많이 부족한지 이 곳에 와 보니 알겠어요. 한석봉이 아닌 이 석봉이 되어 갈테니 기다리세요. 그리고 지켜 봐 주세요"
아들의 대견한 마음씨에 잠시 우쭐했지만 막상 기숙사에 짐을 정리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더군요. 한석봉의 어머니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었습니다.
괜찮다며 어서 가시라며 손을 흔들어 대는 녀석의 모습을 바라보며 돌아나오는데, 갑자기 기숙사의 익숙치 않은 이층침대에서 뒤척이고 있을 아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울음을 토해내었지요.
두 동생과 아빠까지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했지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흐르는 정안천가에 차를 세우고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생각하면 어제의 일과도 같은데 어느 새 일년이 지났습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얼마나 많이 자라고 튼실해 졌는지, 그리고 생각의 속도도 얼마나 빠르게 많이 자랐는지 그저 대견할 뿐입니다.
지난 일 년을 사랑으로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신 박용만담임 선생님, 그리고 모든 학과 선생님들, 밤 낮을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해 주신 사감선생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또한 우리 어머니들을 대신해 아이들의 영양을 책임지고 삼시 세끼 따뜻한 밥으로 아이들의 영양을 책임져 주신 식당의 제2의 어머님들. 영양사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 세탁에 이르기까지 모두 감사합니다. 리고 여러 학부모를 대신해 여러가지 어려운 현안들을 꺼이 대신해 주신 운영위원님들 일년 동안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멀리서 맡겨만 놓은채 그저 가슴앓이만 하고 있는 어미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애써주신 여러선생님과 관계자 여러분의 수고로움과 은혜로움이 없었다면 아이들의 성장도 없었겠지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어제의 새내기들은 이제 오늘의 새내기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한 층 성숙된 모습으로 자신의 바다를 향해 달려 가겠지요.
무의미한 시간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모두 소중하고 값진 값어치를 지닌 시간들임을 기하면서 다시 한 번 화이팅을 외쳐 봅니다.
사랑하는 아들 화이팅! 자랑스런 한일고 화이팅!.

봄이 오는 길목에서 보냅니다.